- jin yeowool
10개월치 낙서
가끔은 마시는 커피에서 종이향이 베어 나온다. 그건 당신이 한번이라도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친환경적 삶을 실천해 본 사람이라면 분명 눈치 챘을 일이다. 커피에서는 일회용 컵에선 베어 나온 종이의 맛이 있다.
또 비 오는 숲이 어떠하냐 하면, 뱀의 피육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촉촉이 젖어 있는 잎들을 헤치며 낙하하여 침입하는 그 장대같은 비들은 잎들을 저장매체 삼아 후두두두둑하는 빗방울의 결성체들로 나무의 몸을 타고 내려온다. 먹이 잔뜩 낀 소리치는 하늘에로 뱀의 피육같은 매끈한 나무기둥들이 솟아나고 두드러진다.
2018.5.6
시, 2010 감독: 이창동
poetry 시는 죽어가고 있다. 시에 목매는 여자
미자는 성교의 값으로 얻어낸 돈을 손자의 성폭행 합의금으로 공범자의 부모에게 전달한다.
꽃은 피처럼 아름답다. 살구 역시 몸을 내던져 다음 생을 준비한다.
2018.11.21
자꾸 잔여물이라는 단어가 내 이름으로 오독된다. 그건 일견 기분나쁜 뉘앙스로 느껴졌으나, 어쩌면 좋은건지도 모르겠다는 쪼그만 심상이 점점 쫓아온다. 잔여물이라니. 너무도 분명하며 잉여적인 존재라니. 누구도 찾지 않아서 진열대의 한자리 뒷열에서 자리로 뿌리내리고 골동품화되어가듯이, 그건 역시 오독되어 침범된다면 오히려 영광이다.
세피아색 굵은 고목에 달린 은행잎이 마치 샹들리에처럼 흔들려, 크리스탈처럼 소리내는듯도 하고.
2018.11.27
귤은 찬 바람이 살을 침해하기 시작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보편적으로 인기있는 과일이겠지, 나에게도 추워지면 우리집 난방이 안되는 베란다 한켠에 노란 박스채로 겨울내 먹을 식량마냥 덩그러니 존재하는 귤박스가 노스탤지어처럼있다. 그러면 먹다지쳐 박스의 아랫쪽을 차지했던 애들은 분필가루 묻힌듯 곰팡이를 묻혀가고 있는중이곤 했었지. 공식처럼 된 추운공기와 달콤하기도 또 상큼하기도 한 귤은 원래도 기호하는 것이었는데, 위안부 할머니 증언집에서 찾은 미쟝센이 더해졌다. 증언집의 서사는 차치하고 난파된 배에서 물로 떠밀려 나온 할머니와 일본군은 찬 바다에서 비행기에서 떨궈준 미캉(귤)을 먹는다. 아마도 앞으로 나는 귤을 먹을때마다 이 이미지를 감미하겠지. 지금도 귤을 하나씩 뜯어 먹는데, 적적 하나씩 뜯어지는 귤은 뜯어지면서도 그것이 생각보다 얼마나 쎄게 서로 붙어져 있는 과육들인지 새삼스럽다. 이렇게 단것이었나 이 과육들은,
2018.12.5
지하철에서 붙어온 낯선 머리카락
또 연착이다. 안그래도 강의에 늦어 서둘렀는데, 서두른 의미가 없어지게 어김없는 연착으로 짜증을 돋구는 JR의 츄오센. 분명 누군가 달리는 열차로 자기의 몸을 던져 목숨과 많은 사람의 시간을 거래했겠지. 그런데 아니였다. 사슴이 돌출해 30분가량의 연착이 생긴거였다.
2018.12.5
여름의 녹음을 삼킨 호수에서는 잔인한 냄새가 난다. 잔인한 냄새가 나는 그곳은 모든 걸 분쇄시키고 흔든다.
2018.12.5
새는 이제 나뭇가지가 아닌 전깃줄 혹은 인터넷케이블 위에서 휴식한다. 나무가 중요한 자원이었던 때가 있었듯이 전기와 전자망이 이제는 우리에게 큰 자원이란것을 대변하는 걸까. 풍경은 바뀌었고, 새의 터전도 바뀌었다.
2018.12.11
C교수님은 천재다.
"서양말로는 thing이라고 밖에 표현이 안되는데 우리말로는 물건物件이라고, 그게 something special!이라는 거야." 사물이 가지는 사건성이라니. 물욕을 불러일으키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또 21세기 아재 개그도 많이 느셨다.
"디자이너말고 디자이나가 돼."
2019.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