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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 yeowool

미완의 픽션 혹은 논픽션


사회적 인간

타지에서의 유학생활은 밤의 숲처럼 조용하고 외로운 법이다. 굵직한 주름을 가진 암갈색의 나무에서 하얀 벚꽃이 피었고, 마치 그 겹겹의 주름으로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잉태해내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겹겹의 계절을 이겨내고 나온 생명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시간도 주지 않고, 비바람은 이번 해의 설렘을 앗아갔다. 그렇게 벚꽃 없는 도쿄의 4월 학기가 시작되고 K는 지난해의 본인을 성찰삼아 좀 더 사회적인간이 되기로 생각했다. K는 서울의 어중간한 4년제 대학을 졸업했고, 그녀의 전공을 진심으로 즐기는 어쩌면 모든 것에 열정적인 인간이었으나, 그러나 정작 돈을 생각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일은 못 찾았다고 생각하는 미성숙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래서 K는 또 다시 유학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돈 따위는 재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고 나름 행복한 인간이라고 자위하고 있던 중이었다. 끼니 따위 못 챙겨 먹어도 재료비에 더 쓸 수 있으면 되고, 안정적인 직장 따위 가지지 않아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K는 작가로 살 수만 있다면 근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벚꽃이 피지 않는 4월은 또 다시 K에게 조급함을 상기시켰다. 그렇게 K는 사회적 인간이 되기로 결정한 것이다. K의 조급함을 인간과의 관계로나마 회복시키고, 그것이 마치 두통약처럼 금세 K의 뇌에 있는 조급스러움의 피질에 가서 작용할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기대를 걸고는 한 모금에 마셔버렸다. 그때 교포인 유일한 친구 L이 전화를 걸어와 K를 본인의 친구 전시회에 초대하였다. 교포인 L은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K에게는 또 하나의 자위처였다. K가 지금 생활하고 살고 있는 그 흙의 위에서 K는 아주 열정적이며 우등생일지라도 타자였고, 결국은 이 땅 위에 우등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저녁에 밤이 찾아오듯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한 K에게 교포라는 이 땅과 내 땅의 매개자 같은 존재는 아주 좋은 위안의 장소이며, K를 언제든 이 배타적 땅의 영역으로 편입시킬 수 있는 예인적 존재였다. K는 에일리언이다. 합법적인 에일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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