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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 yeowool

문화인류학 논제들


모리 타쯔야의 <A> 라는 작품이 가지고 오는 현대 일본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모리 타쯔야의 <A>라는 작품에서 옴진리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관계되는 제집단의 모습과 함께 이해관계에 의해 구축되는 우리사회의 축소판을 볼 수 있다. 옴진리교 신자들 그리고 그들을 비난하던 미디어 관계자 그리고 미디어를 통해 옴진리교를 접하던 우리들, 그리고 한편으로는 옴진리교에 의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혹은 피해자의 가족들)과 옴진리교 교당 주위의 주민들, 그리고 경찰, 재판 등과 같은 사회의 형사, 사법기관과 제도들. 여기서 문제는 이 여러 집단의 존재에서 늘 촉발되는 자기동일화의 과정이다. 수업에서 우리는 한때 미디어 관계자와 우리의 공범관계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였으며, 경찰 혹은 법과 우리의 공범관계, 주민과 우리의 공범관계를 이야기하였다. 기존 일본에서의 반응은 옴진리교에 절대 ‘악’의 이미지를 투사하였던 듯 하다. 그러나 모리 타츠야의 <A>에서는 그 상황을 역전시켜 미디어나, 경찰, 주민들을 악으로 편입시키려 하는 뉘앙스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모리타츠야가 아토가키(후기)에서 회심적으로 이야기 하였듯, 모리타츠야는 어떠한 사건 혹은 현상을 바라보는 틀을 문제삼는다. 그리고 그에 속지말라고 한다. 자기주체적 사고가 아닌, 틀에 의해 우리를 그 틀에 쉽게 동일시 시키고 거대정보에 허덕거리며 마구 주서 먹는 인스턴트적 사고, 그리고 자기동일시와 함께 촉발되는 자기와 타자의 문제, 더 나아가 선과 악의 이분적 구분, 이것이 비록 일본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의 짧은 일본생활로 미루어 보아 전체적 행동을 가끔은 필요이상으로 중요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사고와 결부되어 일어나고 있는 일본사회가 가진 문제임에도 틀림없는 것같다.

모리 타쯔야의 <A>를 본 후, 새롭게 ‘사실’이나 ‘정보’를 재정의 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사실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라기 보다는 유동적인 여러 기억들의 총체이지 않나 생각된다. 상기 질문의 논술에서도 언급한대로 모리타츠야의 <A>는 사실을 파악하는 프레임에 대해서 시사한다. 우리는 거대정보사회에 살고 있고 습성적으로 정보의 프레임워크에 능한 인류이다. 그러나 프레임을 투과시켜 보는 실체는 늘 고정되기 마련이다. 프레임은 늘 질서와 논리를 요구하고 말이되는 내러티브를를 원하며, 따라서 한 현상에 대한 단일한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거대정보사회에서 많은 정보를 위계적으로 취합하는데도 유리하다. 그러나 재정의 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같은 음식을 먹어도 그에 대한 무한한 평가가 있음을 알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사실’ 역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집착적이며 편집증적으로 사실을 기념비적 이미지로 만들고 자 하는 이유는, 초고도 정보사회에서 유리한 정보의 수합으로 권력의 우위를 선점하고자 하는 욕망의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정보는 말 그대로 in-formation 즉 어떠한 현상에 형식(형태)을 부여하기 위한 헤게모니적 존재일지 모르겠다.

이노우에 히사시는, 스스로 직접 경험하지 않은 피폭이라는 경험에 접근함에 있어, 어떠한 방법을 취하였는가?

이노우에 히사시가 접할 수 있는 모든 정보에 최대한 접근하려는 노력도 보였고, 굉장히 세밀하게 그들의 모든 경험에 다각적으로 접근하려는 모습들이 보였으나 접근방법들중 본인이 가장 집중한 부분은 어떠한 역사적 기록이나 그런것보다도 증언에 집중되어있는 모습이었고 왠지 이해가능한 부분이었다. 물론 이노우에 히사시가 극작가로서 그것을 연극화 하기위해 증언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나, 극작가에게 있어 증언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역사적으로 공인되는 사실이기도 하지 않은가(그것을 반영여부와 관계없이)? 그가 노트에 증언의 인상깊은 부분을 일일이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서 지난 몇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천착하는 본인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단지 그가 극작가이기에 증언에 깊이 공감하고 소중히 다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통 어떠한 ‘사건’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정보를 수집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오히려 관심을 가지고 그것의 정보와 사실에 집착하고, 수집하면 할 수록 오히려 그 모든 정보와 ‘사실’들에 의해 진짜로 일어났던 그 순간의 진실적인 사건으로 부터 멀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증언집과 같은경우는 다른 정보들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건의 오성적 파악을 흐트릴 수 있는 감성적인 사람의 시선이 삽입되며 다른 정보들과는 다른 편향적 의견이 될 때도, 자극적이고 강한 표현방법을 쓸 때도 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정제되어진 정보앞에 서서 사실을 가늠하려 할 때 보다, 한 때 저러한 인간의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한 단어 한 단어 새겨져 증언하고 있는 현재까지 내려오는 과정앞에 서게되면 그 강력한 감정적 사실앞에 더 강한 ‘사실’을 가늠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과 회한이 든다. 편집된 기억일지는 모르나 영상에서 이노우에 히사시에게 인터뷰어가 ‘피해자’적 입장의 피폭자들에 관한 질문을 하나, 그에 대해 무시하듯 지나가는 것이 기억에 있다. 그는 피해자 가해자라는 큰 이중구조로 피폭자들 혹은 그들의 가족들을 이해하지 않는다. 단지 수기로 한단어 한단어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첩에 옮겨적는 과정을 통해서나마 몸과 마음 깊이 그 증언불가능한, 그리고 재현불가능한 아픔을 헤아려보려 했을 것이다.

역사를 생각하는데 있어서, 대문자의 History와 소문자의 복수형 histories를 대비(서로비교함)시키는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거대서사로서의 History와 복수의 histories를 대비시키는 일은 힘의 재분배로 사실들 간의 균형을 잡고 자유로운 역사를 만드는데 추동력을 실어주는 것에 그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통 소문자 histories의 주체들은 여성, 흑인, 노동자등과 같이 여러겹의 시간들을 거쳐오며 소외되고 억압받던 권력의 구조적 하위층에 머물렀던 존재들이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와 그리고 기억의 투쟁에서 조차 소외를 겪게 만드는 구조가 지속적으로 작동되어 왔다. 우리는 흔히 우리의 역사를 반추하여 우리의 미래를 그려간다. 비판적이며 성찰적 자세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탐색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성찰의 대상이 대문자 History에만 머물러 있다면, 오히려 소외와 억압의 구조 안에 있던 우리의 가장 취약하고 변혁가능한 부분들을 반추시키지 못할 것이다. 또한 복수의 소문자 histories의 이해로부터 살아 남겨진 history를 포착하면 떠오르는 숨겨진 서사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어떠한 힘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지 역사에서 떨어진 이데올로기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것 역시 개개인의 자유와 주체적인 역사이해해 중요한 주춧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발터 벤야민 <역사철학테제>에, ‘과거를 역사적으로 관련시키는 것은, 과거를 원래 있었던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에 번뜩이는듯한 회상을 붙드는 일이다. 역사적유물론의 문제는, 위기의 순간에 예기치 않게 역사의 주체 앞에 부상하는(떠오르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것이다.’라는 한 구절이 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 가능한가?

강의 내에서 우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마치 화살표와 같은 단선적인 무엇으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이에 의해 단선적인 선에서 탈선되는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을 시, 원래의 선에로의 회귀를 요구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견해를 통해 역사와 관련한 사고를 시도해보았다. 이러한 견해를 필자는 권력이 만들어낸 운동에 의해 돌아가는 시간(시계), 그리고 그 운동을 만드는 결속된 거대에너지가 관성을 가져 묵살되는 다른 소규모의 운동들이라는 맥락으로 이해하였다. 발터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를 직접 읽지 않아 상기의 문항에 대답하는 것이 조금 넌센스 있을 수 있으나, 발터 벤야민의 <역사철학테제>에서의 한 구절이 가진 힘 만으로도 여러 상상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여, 상기 한 구절로부터 파생된 본인의 생각을 조금 논술해본다. 과거를 ‘역사 History’ 라는 거대한 서사혹은 거대한 맥락으로 이해하는 것은, 과거를 단편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과거라는 것은 수업에서도 여러번 다뤘던 무수한 histories의 복합체로, 근대적 시각으로 만들어 진 하나의 거대과거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한 합리주의적 사고이며, 권력의 구조에 의해 이해되는 하나의 과거만을 남겨 놓는 것을 지시한다. 이는 근대의 도래이래 국민 국가의 형성과 그에따른 역사학의 발생과 결부되어있을 것이다. 원래 존재할 리 없었던 역사학이 학문으로 혹은 이데올로기로 그 위상이 올라가며, 우리는 수많은 경계들-영토의 경계, 신분의 경계, 인간과 자연의 경계등을 포함한-에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그에 의해 줄다리기에서 이긴자들들과 진자들의 불균형한 역사가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위기의 순간에 번뜩이는듯한 회상을 붙드는 일’, ‘위기의 순간에 예기치 않게 역사의 주체앞에 부상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것’, 수업내에서 다룬 위기의 순간과 그리고 회복요구와는 다소 상이한 해석이라고 생각하나, 필자는 여기서 말하는 번뜩이는 회상과 부상하는 과거의 이미지와 같은 것은 단선적 시간안에 고정시키는 역사로, 즉 발터 벤야민의 구절에서도 보이듯 역사의 주체 앞, 즉 역사 기술의 주체(권력의 주체)가 희망하는 영원한 역사의 이미지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까지의 역사학의 문제는 합리주의라는 미명아래 끊임없이 이 신화화된 역사를 붙들고 그 권좌를 내려놓길 거부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권자의 옆에 나란히 앉아 단선적 시간에서의 현재라는 점에서 과거를 주시하고 있다. 때문에 과거의 단면만을 바라볼 뿐이다. 권자의 주위를 과감히 벗어나 생경한 과거의 영역에 들어가 파노라마적으로 펼쳐지는 과거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수업에서 언급된 벤야민의 역사의 시간에 대한 비유 ‘균질한 공허의 시간’은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영상 <NHK 스페셜 이와지마 생환자 61년째의 증언> 에 등장하는 생환자들의 증언으로부터 알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날, ‘전쟁을 모르는 사람’ 이 전쟁을 말할 때의 주의점을 포함하여, 영상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을 술하시오.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인 일본, 우리는 역사에서 전쟁을 국가 대 국가의 투쟁으로 읽고 있으며, 그렇게 역사적으로 읽은 것들을 쉽게 미국인들=이긴자들, 일본인들=진 자들 이라는 인식으로 전이시킨다. 그러나 영상에서의 생환자들을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병사 였던 할아버지는 (전쟁을 통해) 죽어서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그것이 의미가 없다면 지독한 일이지 않겠느냐고 집요하게 그때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묻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미군병사였던 할아버지도 말한다. 전쟁은 끔찍한 것이고, 전쟁이라는 것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역사의 주체를 국가로 상정하여 선과 악 혹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말하는 것은 쉽게 이뤄지고 있으나, 진정한 전쟁의 경험자였던 그들이 주체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무력을 가지고 행하는 싸움의 형태’인 전쟁이 애초에 이기고 지는것을 결정할 리 없다. 피해자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뿐이다. 역사학나 국가들은 교묘하게 경계들을 이용하여 우리에게 조용한 폭력을 가한다. 국가, 같은 국민임을 앞세워 전쟁에 나가 국가에 헌신할 것을 정당화 시키고 그 과정에서 국기같은것들은 내집단의 표식같은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우리는 보이지 않고 만질수 없고 사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상징화 시키고 이미지화 시키려 노력한다. 그래야 그것의 존재를 믿을 수 있기때문이다. 상징(이미지)의 내재된 폭력성에 대해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시받은 이미지가 실재인 우리의 자유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과거 1개월 내에서 본인이 웃은 것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그 때의 ‘웃음’ 과 수업내에서 다룬 ‘웃음’의 사례를 비교해 보시오. 그 두 개에 어떤 공통점과 차이가 있는지, 그 두가지의 ‘웃음’은 해석하기 쉬운 것인지 해석하기 어려운 것인가 등.

지난주 일요일 신주쿠행 전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전차에 타자 뭔가 비어보이는 좌석들이 보이길래 앉으려고 보니 어떤 남성이 누워있어 좌석 두개 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양 옆은 비어있었다. 누구도 그 자리에 앉으려 하지 않길래 그냥 주무시는 것 같아 그 옆에 본인이 앉았다. 동승한 친구 둘은 앉으려 하지 않고 우려하는 눈으로 나를 지키듯이 주시하는 듯 했다. 그런데 몇 정거장을 지나쳐 가도 옆에 누워있는 사람이 조금도 움직이지도 않자 문득 괜찮은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쪽에 일렬로 앉은 사람들도 안보는척 하며 왠지 모르게 주시하고 있는 것을 분위기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도 조금씩 혹시 아프셔서 내 옆에 쓰러져 있는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고 말을걸어볼까 말까 몇번이고 내적으로 고민하고 앞에 서있는 친구들에게 얼굴이 보이느냐 어때보이느냐 물어보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일어나려고 하는 제스쳐를 취하는데 일어나지 못하는것을 보고 놀라서 얼른 다가가 말을 걸었다. 어디 아프신가요? 괜찮으세요? 얼굴 가까이 가자 술냄새가 많이 풍겨왔고 다행이 아프신건 아니란걸 몇몇 제스쳐로 알 수 있었다. 다시 자리에 앉아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함께 웃음이 나왔다. 약간의 창피함도 섞인 무마성 웃음이었다. 별거 아닌데 괜히 의식있는 사람인 양 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마주보고 앉아있는 앞열의 사람들이 모두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서있는 두명의 한국인 친구들도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은 다소 건조하게 느껴지는 일본, 도쿄에서 모르는 사람사이에 같이 웃어 본 생소한 첫경험이었다. 술마신 아저씨의 제스처, 비일상적 순간, 혹은 외국인인 나의 비맥락적 행동(?) 등 많은 영향이 있었겠으나 가장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긴장으로부터 해소 된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강의내에서 다룬 의도적인 웃음유도과는 다르게 이것은 자연발생적이었다. 오히려 수업내의 일본식 유머를 관람할 때 나는 매우 어려움을 느꼈다. 문화적,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일본 통용의 지식이 충분히 숙련되어 있지 않았고, 어쩌다 있는것 마저도 조금 느리게 웃음이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자연적인 상황에서 유발된 웃음은 오히려 일본어를 모르는 철저한 외국인이자 이방인인 내 친구조차 웃음의 영역에 끌어들일 수 있었다. 비언어적 코드가 오히려 웃음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거나, 혹은 해석하기 쉬운 영역으로 견인하는것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는것이 조금 명료해 진 경험이었다.

타마미술대학 2018년 전기에 개설된 <문하인류학> 강의 내 가벼운 논제들로부터

지금보니, 엉망진창이다.

森達也の『A』という作品でオウム真理教の信者を中心にし関係される諸集団の姿とともに利害関係によって構築される我々の社会の縮図を見ることができる。オウム真理教の信者そしてそれらを非難していたメディア関係者、メディアを介してオウム真理教を接していた我々、そして一方では、オウム真理教によって被害を受けた被害者(あるいは被害者の家族)とオウム真理教の教堂の周辺の住民、そして警察、裁判などの社会の刑事、司法機関と制度。ここでの問題は、この複数の集団の存在からいつも触発される自己同一化の過程である。授業では、我々は、かつてメディア関係者と私たちの共犯関係について話したり、警察や法と私たちの共犯関係、住民と私たちの共犯関係を話したりしてきた。既存の日本での反応は、オウム真理教に絶対「悪」のイメージを投影したようだ。しかし、森達也の『A』では、その状況を逆転させて、メディアや、警察、住民を悪に編入させようとするニュアンスを感じざるを得ない。しかし、森達也があとがきで会心的に話したように、森達也はある事件や現象を眺める枠を問題視する。そして、それにだまされてないようと言う。自己主体的な思考ではなく、枠によって、私たちをその枠に簡単に同一視させ、巨大情報にあえいながらむやみに拾って食べるインスタント的思考、そして自己同一視とともに触発される自己と他者の問題、さらに善と悪の二分的区分、これが、日本社会だけの問題ではないと考えている。しかし、全体的な行動を、時には必要以上に重要視する日本の文化的思考と結びついて起こっている日本の社会が持っている問題にも間違いないと思う。

事実というのは、固定された実体というより流動的な諸記憶の総体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上記の問いの答えでも述べたように、森達也の『A』は事実を把握するフレームに関して示唆している。私たちは、巨大な情報社会に生きていて習性的に情報のフレームワークに能な人類である。ただし、フレームを透過させて見る実体はいつも固定されるはずだ。フレームは、いつもの秩序と論理を求め、脈絡あり話を求め、したがって、ある現象の単一のイメージを必要とする。それは巨大情報社会の中で多くの情報を位階的にアグリゲーションするのにも有利である。しかし、再定義の必要もなく、我々は、同じ食べ物を食べても、それに対する無限の評価があることを知っている。よく考えてみると、「事実」にも固定された実体がないことを知っている。ところが、執着的で、偏執症的に事実を記念碑的イメージにしようとする理由は、超高度情報社会で有利な情報のアグリゲーションにより、権力の優位を先取りしようとする欲望の機制が働くからではないか?情報は、文字通りin-formation、つまりある現象に形式(形態)を付与するためのヘゲモニー的存在かもしれない。

井上ひさしが接することができるすべての情報に最大限、そしてとても繊細に、それらのすべての経験に多角的にアプローチしようとする姿が見えたがその接近法の中で、本人が最も集中した部分は、どのような歴史的な記録のようなものよりも証言に集中している様子であったし、なぜか理解可能な部分であった。もちろん井上ひさしが劇作家としてそれを演劇化するために、証言はとても重要な部分であったと思うが、劇作家にとって、証言ほど重要なのが、歴史的に公認されている「事実」でもないか(それを反映するかどうかにかかわらず)。彼のノートに証言の印象深い部分をいちいち書いて下がる様子を見ながら、過去数年、日本軍「慰安婦」問題に深く掘り下げる本人の姿が重なって見えた。ただ、彼が劇作家だから証言に深く共感して大切に扱ったとは思わない。通常ある事件に対して関心が生じた場合に情報を収集するものだ。しかし、関心を持ち、それの情報と事実に執着して収集すればするほど、むしろそのすべての情報と「事実」によって実際に起きたその瞬間の真実な事件から遠ざかる感覚を感じることができる。ところが、証言集のような場合は、他の情報とは異なる性格を持っている。一見してみれば、事件の悟性的な把握を散らかせる感性的な人の視線が挿入され、他の情報とは異なる偏向意見になるときも、刺激的で強い表現方法を使うこともある。しかし、理性的に精製された情報の前に立ち、事実を計ろうする時より、かつてああいう人間の感情を呼び起こし、それが一つ一つの単語に刻まれて証言している現在まで降りてくる過程の前に立つと、その強力な感情の事実の前に、より強い「事実」を計ることができるか。という懐疑感と悔恨がかかる。編集された記憶かもしれないが映像で井上ひさしにインタビュアーが「被害者」的立場の被爆者についての質問をするが、それに対して無視するように通過することが記憶にある。彼は被害者、加害者という大きな二重構造で被爆者やその家族を理解していない。ただ手書きで一文字、一文字その痛みの過程を手帳に書き写す過程を通じて体と心の深く、その証言不可能な、そして再現不可能な痛みを察してみようしたものである。

歴史を考えるにあたって、巨大叙事としてHistoryと複数のhistoriesを対比させることは、力の再分配に事実間のバランスをとり、自由な歴史を作る推進力を与えることに意味があるだろう。通常小文字historiesの主体は女性、黒人、労働者などのように、重ねた時間を経てきながら疎外され抑圧を受けた権力の構造の下位層にとどまっていた存在である。彼らには、現実には勿論、記憶の闘争でさえ疎外を経験する構造が継続的に動作されてきた。我々はしばしば、我々の歴史を反芻して、私たちの未来を描いていく。批判的であり、省察的姿勢で、より良い未来のための過去を探索したりする。ところが、このような省察の対象が大文字Historyのみにとどまっていると、むしろ疎外と抑圧の構造の中にあった、我々の最も脆弱で変革可能な部分を反芻させることができないだろう。また、複数の小文字historiesの理解から生きて残されたHistoryを捕捉すると浮かんでくる隠された叙事を発見することになる。私たちの社会がどのような力によって動いているか歴史から離れたイデオロギーを発見することになるだろう。これも一人一人の自由と主体的な歴史理解に重要な礎になるのではないかと思う。

授業の中で、我々は時間というものを、まるで矢印のような単線的なものに見る傾向があり、これにより単線的なラインからの脱線する危機の瞬間が訪ねてきた時には、元のラインへの回帰を求める現象が発生するという見解を介して、歴史と関連した思考を試してみた。これらの見解を筆者は権力が作り出した運動によって動く時間(時計)、そしてその運動をつくる結束された巨大なエネルギーが慣性を持って黙殺される他の小規模の運動であるという脈絡で理解した。ヴァルター・ベンヤミンの<歴史哲学テーゼ」を直接読んでいないため、この問いに答えることが少しナンセンスでもあるが、ヴァルター・ベンヤミンの<歴史哲学テーゼ」での一節が持つ力だけでもいくつかの想像ができ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問い一節から派生した本人の考えを少し述してみる。過去を「歴史History」という巨大な叙事あるいは巨大な脈絡で理解するのは、過去を断片的に理解するものである。過去というのは授業でも何度も扱った無数のhistoriesの複合体であり、近代的視覚によって作られた一つの巨大過去に理解することは至極に合理主義的な思考であり、権力の構造によって理解される1つの過去だけを残しておくことを指示する。これは近代の到来以来、国民国家の形成とそれに伴う歴史学の発生と結びついているのだ。元々存在するはずがない歴史学が学問に、あるいはイデオロギーにその位相が上がり、我々は多くの境界ー領土の境界、身分の境界は、人間と自然の境界などを含むーで権力を獲得するための綱引きを開始する。それにより綱引きで勝った者たちの歴史が存在し始めたと考えている。 「危機の瞬間にひらめくような回想を捉えること」、「危機の瞬間に思いがけず歴史の主体のまえにあらわれてくる過去のイメージを、捉えること」、授業内で扱った危機の瞬間と、そして回復の要求とは多少異なる解釈だと思うが、筆者はここで言うひらめくような回想とあらわれてくる過去のイメージのようなものは単線時間の内に固定させる歴史であり、すなわち、ヴァルター・ベンヤミンの節でも見られるよう歴史の主体の前、すなわち歴史記述の主体(権力の主体)が希望する永遠な歴史のイメージを示すことで、今までの歴史学の問題は、合理主義という美名の下、常にこの神話化された歴史を握り、その権力の座から降りてくるのを拒否していると解釈するものである。そして、私たちは、その権座の隣に並んで座って単線的時間での現在という点から過去を注視している。そのため、過去の断面だけを眺めるだけである。権座の周りを果敢に抜け出し生き生きした過去の領域に入ってパノラマ的に広がる過去を見ないものである。授業で言及されてベンヤミンの歴史の時間についての隠喩「均質な空虚の時間」は、この文脈で理解できるものではないだろうか。

戦勝国である米国と敗戦国である日本は、我々は歴史の中で、戦争を国家対国家の闘争で読んでおり、その歴史的に読んだものを簡単にアメリカ人=勝った者、日本人=負けた者という認識に転移させる。しかし、映像での生還者たちの証言からわかるように、日本兵だった男性は、(戦争で)死んで何の意味があったのか、それは意味がないとしたらひどいことではないでしょかと執拗にそれの意味が何だったかについて尋ねる。そして同様に、米軍兵士だった男性も言う。戦争は恐ろしいものであり、戦争というものは、勝者も敗者もないと。歴史の主体を国と想定し、善と悪、あるいは勝ち負けで言うことは簡単に行われているが、真の戦争の経験者であった、彼らは主体となることは容易ではない。 「武力を持って行うの戦いの形態」である戦争がそもそも勝ち負けを決定するはずがない。被害者と別の被害者を量産するだけである。歴史や国家は、巧みに境界を利用して、私たちに静かな暴力を加える。国は、同じ国民であることを前面に出して戦争に出て国に献身することを正当化させ、その過程で国旗のようなものなどは、内集団の標識のようなものと理解される。しかし、よく考えてみると、私たちは目に見えない、触れられない、実際には信じられないことを象徴させ、イメージ化させようと努力する。そうしないとその存在を信じ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ある。シンボル(イメージ)の内在された暴力性について我々はいつも警戒しなければならない。指示されたイメージが実在である私達の自由を支配しないように。

先週の日曜日、新宿行の電車であったことである。電車に乗ったら何か多めに空いている席が見えて、座りしようとしてみるとある男性が横たわっている座席二つ半程度を占めていた、その両脇には空いていた。誰もその席に座ろうとしなかったから、寝ているようなその男性の横に本人が座った。同乗した友人二人は座らないまま心配している目で私を保ちよう注視するようだった。ところが、いくつかの駅を通り過ぎても横に横たわっている人が少しでも動かなかったから、いきなりいいのだろうか?と思った。前方に一列に座った人たちも見ないふりをしてなんとなく注視していることを雰囲気で感じとれた。それとともに本人も少しずつ今まで病気で倒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心配になり始めた。言葉をかけてみようかしないか内的に悩んだり、前に立っている友人に顔が見えるか、どう見えるか聞いたりしていた。その刹那、起きようとするジェスチャーを取るのに起これないことを見て驚いて急いで近づいて声をかけた。どこか痛いでしょうか?大丈夫ですか?と。顔の近くに近付いたらお酒のにおいがたくさんしてきたし、よかったことに病気になったのではないのを複数のジェスチャーで知った。再び席に座ってよかったという安堵感とともに笑いが出た。少しの恥ずかしい感覚も混ざった笑いだった。大した事でもないのに意識のある人ぶりしたように見えたのではないか?という無駄な考えさえした。ところが、向かい側に座っている前の列の人々がすべて笑っていた。そして、私の前に立っている二人の韓国人の友達も笑っていた。その笑いはやや乾燥に感じられる日本、東京で知らない人との間で一緒に笑った、疎い初めての経験だった。酒を飲んだおじさんのジェスチャー、非日常的瞬間、あるいは外国人である本人の非文脈的行動(?)など、多くの影響があっただろうが、最も感じることができたのは、全員が緊張から解消された安堵感を同時に感じているのだった。授業の中で取り上げた意図的な笑い誘導とは別の方法で、これは自然発生的であった。むしろ授業内で日本風ユーモアを観覧するときに本人は非常に困難を感じた。文化的、社会的に必要とされる日本通用の知識に十分に熟練されていなかったし、偶然に知っていたことさえ少し遅い笑いが出てくる場合があった。しかし、自然な状況で誘発された笑いでは、日本語を知らない徹底した外国人であり、異邦人である私の友人でさえ笑いの領域に引き込むことができた。非言語コードがむしろ笑いにおいて重要な役割を担っていたり、あるいは解釈しやすい領域で牽引することに役割をすることができることが少し明瞭になった経験で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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