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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in yeowool

공포와 불안, 그리고 욕망의 구조(恐怖と不安、そして欲望の構造)


2001년,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9.11테러가 일어난다. 그 때 매우 어린 나이였으나, 학교에서 돌아와 거실의 TV앞에 우두커니 선채로 비행기가 건물에 부딪히는 장면을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보았다. 물론 반복적으로 보는 데에는 자의에 의해도 있으나 많은 재난이나, 재해, 인재 등이 있을 시 늘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그 사건도 끊임없이, 반복해서 방송되었다. 뉴스나 세상일에 관심이 있을 리 만무했던 11살, 나는 어머니보다도 아버지보다도 그 장면을 더욱 열성적으로 보았다. 비로소 월드트레이드타워가 무너져 내릴 때에는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기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건물은 무너져 내리며 마치 영화에서 본 듯한 먼지와 화염과 함께 지면으로 가라앉았고, 그 큰 고층빌딩은 질량보존의 법칙을 무시하듯 흔적 없이 지면으로 흡수되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피해를 준 잔혹하고도 공포스러운 사건임이 자명한데, TV안에 갇힌 채로 무한반복의 루프를 타고 있는 미장센은 오히려 끔찍하게 그 반대였다.

나는 왜 그 장면을 반복충동에 사로잡혀, 그리고 굉장히 관음증적으로 아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돌려 보았을까. 거기에는 어쩌면 무섭다고 눈을 반쯤 가리고 애인의 손을 꼭 잡으면서도, 끝까지 다 지켜보는 호러 영화나, 좀비 영화 같은 것이나, 나에게 지독했던 트라우마 같은 것들이 꿈 속에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고 다시금 나에게 새겨지는 것 따위의 메커니즘과 연결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신 안 보겠다며 다시금 찾아가 좀비 영화를 보고, 꿈의 형상 하나하나를 굳이 꺼내내어 무슨 의미 일지 하나씩 상정해보고 하는 것들은 어쩌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변덕스럽고 변태스러운 메커니즘일지도 모르겠다. 공포는 외부에로 가지는 위험요인에 대한 방위, 불안은 내부에로 가지는 위험요인에 대한 방위라면 우리는 늘 내, 외부로 어떤 방위를 희망하고 있다. 위험이나 위협으로부터 자기존재가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구원의 마음, 기대와 같은 것이다. 그런 방위가 필요하지 않은 매우 자유롭고 호기로운 상황에 놓이면 욕구 혹은 욕망하는 것이 사라지고 자기의 존재가 희미해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일례로, 모국의 대학동기와 만나 담소를 나누던 중, 지난날 본 영화의 충격적 미장센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원양어선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관계없던 두 남녀는 우연히 살인현장을 목격한다. 그 살인현장을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한 여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같이 살인을 목격한 그 남성은 본인의 두려움과 함께, 그 여성을 달래며 안아주는 듯하다 둘은 살인현장이자, 정돈되지 않은 배의 바닥에서 두려움을 업고 격렬하고 날것의 섹스를 나눈다. 실제로 영화는 아직까지 보지 않았으나, 이 장면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 좋은 영화다!’라고 느낄만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들이 처한 공포, 위협, 불안은 벗어날 수 없는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더욱 심화된다. 그 때에 두 이성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방위는 성적인 욕망, 욕구 아니었을까? 그 큰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섹스라는 큰 욕구만이 치환될 수 있는 매체가 아니었을까. 공포나 불안 앞에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욕망이나 욕구, 감정들은 사회에 속하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수하고 본능적이고 야만적인 것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2001年、21世紀に入ったばかりに,9.11テロが起きる。その時、非常に幼い年だったが、学校から帰って居間のTVの前につくねんと立ったままで飛行機が建物にぶつかるシーンを継続的に、反復的に見た。もちろん、反復的に見るには自意によってもいるが、多くの災害や、災害、人材等があるときにいつもそうなるのと同様に、その事件も絶えず、繰り返して放送された。ニュースや世事に関心があるはずがなかった11歳、私は母よりも父よりもその場面をもっと熱誠的に見た。初めてワールドトレードタワーが崩壊する時には'やっと来るべきものが来たな!'という奇妙な気さえした。建物は崩壊し、まるで映画で見たようなほこりと火炎とともに地面に沈み、その大きな高層ビルは、質量保存の法則を無視するように跡形もなく地面に吸収された。多くの人の命を奪って、被害を与えた残酷で恐ろしい事件であることが自明だが、TVの中に閉じ込められたままで無限反復のループを乗っているミジャンセンはむしろひどくその反対だった。

私はなぜその場面を繰り返す衝動にかられて、そしてとてもボイアリズム的に知っている内容であるにも関わらず、続けて回してみたのだろうか。そこにはもしかしたら、怖いと目を半分ぐらい隠して恋人の手をギュッと握りながらも、最後まで見守るホラー映画や、ゾンビ映画のようなことや、私に酷かったトラウマのようなものが夢の中で、他の形で現われて再び私に刻まれているなどのメカニズムと連結性があるかもしれない。二度と見ないと言って再び訪れ、ゾンビ映画を見て、夢の形状一つ一つをあえて取り出して出して何の意味か一つずつ想定してみるということは、もしかしたら人間が持っている最も気まぐれで、変態的なメカニズムなのかもしれない。恐怖は外部に持つ危険要因に対する防衛、不安は内部に持つ危険要因に対する防衛なら、私たちはいつも自分の、内外部である防衛を希望している。危険や脅威から自分の存在が破壊されないかという恐怖から抜け出そうとする救援の心、期待のようなものだ。そんな防衛が必要でない非常に自由で、安楽な状況に置かれば、欲求もしくは欲望することが消えて自分の存在が薄れたことを感じることじゃないだろうか。その一例として、母国の大学同期生と会って、談笑を交わす中、過去見た映画の衝撃的ミジャンセンについて話し始めた。遠洋漁船で殺人が起きて、全く関係なかった二人の男女は偶然、殺人現場を目撃する。その殺人現場を目の前で生々しく目撃した女性は恐怖にとらわれて噦泣きを始める。一緒に殺人を目撃したその男性は本人の恐怖とともに、その女性を癒し、抱いてくれるようだったが、二人は殺人現場であり、整頓されていない船の底で、恐怖感を背負って激しく、生物の経たようなセックスをする。実際、映画はまだ見ていないが、この場面を聴くことだけでも'あ、いい映画だ!'と感じるほどの何かがいた。彼らが直面した恐怖、脅威、不安は逃れられない、大海原の船の上でさらに深化される。その時に二人の異性が持つことのできる最大の防衛は性的な欲望、欲求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その大きな恐怖という感情はセックスという大きな欲求だけが置換されるのが可能な媒体ではなかっただろうか。恐怖や不安の前に、私たちが感じられる欲望や欲求、感情は社会に属する以前に人間として持つことのできる最も純粋で本能的で野蛮的なものではないかと思わ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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