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in yeowool
작품서설 : 21세기에서의 평화 (Peace on the 21st Century)
1945년, 한국으로서는 광복, 세계적으로는 냉전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러나 냉전시대가 열린 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다. 두 차례 세계대전의 종말과 함께 온 냉전의 시대는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열전의 형태로 한반도라는 장에서 전도된다. 일본의 식민체제로부터 벗어난 지 5년이라는 세월, 일본의 언어말살, 문화말살 등의 한국인을 우매화시키는 여러 시도들 속에서 수 십년을 버텨내고 투쟁했던 우리들에게 민주화,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의 깊은 연구가 과연 국민 전반에서 가능 했었는가. 그 큰 이념전쟁은 왜 한반도라는 장에서 종주국들의 싸움의 형태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과연, 그 열전이 ‘한국전쟁’이라고 불려 질 수 있는가? 또 그 시기를 여전히 냉전의 시기가 연속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체제의 붕괴, 소멸로서 찾아온 탈냉전-글로벌리즘으로 이어지는 현 21세기는 무슨 시대인가, 그 시대에서 평화는 어떻게 상정될 수 있을까? 한국은 여전히 전쟁 중이며, 그 잔혹한 시기는 여전히 한반도라는 장에 파편적으로 잔존한다. 휴전선(군사분계선)과 함께 생성된 뼈아픈 완충지대, 비무장지대(Demillitarized zone, DMZ)는 그 잔혹함에서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들을 떠올리기라도 하듯 자조하며 그 역설성과 허무성을 보여준다. 전쟁 혹은 비평화의 산물로써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는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은 자연에게는 천혜라는 수식을 다시 선사하듯 끝없이 자유롭고, 향유할 수 있는 평화를 선사했다. 인간의 발이 끊긴 지 어언 70년, 어디까지나 인본주의 아래에서의 전쟁과 평화는 우리를 어떤 21세기로 이끌 것인가?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265 외 3필지에 위치한 노동당사는 공산치하에서 강제 노동력과 경제적 동원에 의해 생산된 건물로서, 대칭적 평면, 정제된 비례성, 기단의 설정 등, 사회주의 리얼리즘 건축 특징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 만큼, 그 기저에 있는 이념의 표상으로서 잘 작용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은 한국에 귀속되어 있으나, 광복 후 전쟁 발발 전까지는 반공활동을 하던 많은 사람들이 잡혀와 고문당하고 학살당하던 공산당의 체제 강화와 선전을 위해 이용되었던 곳이다. 건물은 전쟁의 참화로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의 흔적, 그리고 비교적 온건하게 남아있기는 하나 실내의 구조는 많이 붕괴된 채로 남아있는, 한국의 뼈아픈 전쟁역사와 분단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상징물이기도하다. 이와 불과 500m 채 안 되는 거리에는 감리교회 터가 남아있는데, 이곳은 교회로서의 기능도 물론 있었겠지만, 해방 후 분단이전까지 반공투쟁의 기점으로써 이용되었던 곳이다. 이 두 양극의 이념의 상징이 근소한 거리를 두고 공존했었고, 지금도 해소되지 않은 채 응고된 역사로써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은 공간, 비무장지대의 바로 앞에 비극으로 남아있다. 나는 이 자연과 인간, 양 극의 이념, 전쟁과 평화, 자유와 비자유, 남과 북, 현재와 과거, 혼재된 파라독스의 장에서 무엇을 상정해야 하는가. 우리가 의심 없이 궁극적으로 외치는 ‘평화’란 어떤 것인가? 전쟁의 극으로서의 평화는 어쩌면 인본주의의 전제를 조건하는 평화이지는 않는가. 전쟁의 나라에서 끊임없이 대두되는 평화의 담론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평화를 위한 유사투쟁이지는 않았는가? 질문은 끊임없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2017.6.25를 앞둔 어느 날 진여울
1945年、韓国としては、光復、世界的には冷戦の時代が到来する。 しかし、冷戦時代が開かれてから5年も及ばなかった1950年6月25日、韓国戦争が勃発する。 二度の世界大戦の終焉と一緒に来た冷戦の時代はやがて再び熱戦の形で韓半島という場で転倒される。 日本の植民地体制から脱却して5年という歳月、日本の言語の抹殺、文化の抹殺などの韓国人を愚昧化させる様々な試みの中で数十年を耐えて闘争した我々に、民主主義 (自由主義)、共産主義(社会主義)のような理念の深い研究が、果たして国民全般でできるだろうか。 その大きな理念の戦争は何故、韓半島という場で宗主国の争いの形で起きるしかなかったか。 果たして、その熱戦が'韓国戦争'と呼ばれていられるのか? また、その時期を依然として冷戦の時期が連続していると言えるだろうか? それなら、ベルリンの壁の崩壊と、ソ連体制の崩壊、消滅として訪れた脱冷戦-グローバリズムにつながる現21世紀は何の時代なのか、その時代で平和はどのように想定されるだろうか? 韓国は依然として戦争中であり、その残酷な時期は依然として韓半島といった場に破片的に残存する。 休戦ライン(軍事境界線)とともに生成された痛恨の緩衝地帯、非武装地帯(Demillitarized zone、DMZ)はその残酷さで、アントナン・アルトーの残酷劇を思い出したりするように自嘲しつつ、その逆説性と虚無性を見せている。 戦争あるいは非平和の産物で我々には許されていない非武装地帯という空間は自然には天恵という修飾を再び贈るように果てしなく自由で、享受できる平和を与えた。 人間の足が途絶えてからはや70年、あくまでも、人本主義の下での戦争と平和は、我々をどのような21世紀に導くのか? 江原道鉄原郡(カンウォンド・チョルウォングン)鉄原邑クムカンサンロ265のほか3筆地に位置した労働堂舎は共産治下で強制労働力と経済的な動員によって生産された建物として、対称的平面、整斉された比例性、基壇の設定など、社会主義リアリズム建築の特徴をそのまま生かしているだけに、その根底にある理念の表象としてよく作用している建物だ。 今は韓国に帰属されているが、光復後、戦争勃発前までは反共活動をしていた多くの人たちが捕まってきて拷問されて虐殺された共産党の体制の強化と宣伝(プロパガンダ)のために利用された所だ。 建物は戦争の惨禍に黒く日焼けし、砲弾と銃弾の痕跡、そして比較的穏全に残っているとは言え、室内の構造は多く破壊されたままで残っている、韓国の痛恨の戦争の歴史と分断現実を如実に見せている象徴物でもある。 これとわずか500m足らずの距離には監理教会跡が残っているが、ここは教会としての機能もも勿論あった様子だが、解放後分断前までに、反共闘争の基点で、この利用された所だ。 この二つの両極の理念の象徴がわずかな距離を置いて共存したし、今も解消されないまま凝固された歴史で我々に許されていない空間、非武装地帯(DMZ)のすぐ前に、悲劇として残っている。 自分はこの自然と人間、両極の理念、戦争と平和、自由と非自由、南と北、現在と過去、混在されたパラドックスの場で何を想定しなければならないのか。 私たちが疑いもなく、究極的に叫ぶ'平和'とはどのようなものか? 戦争の極としての平和は、恐らく、人本主義の前提を条件する平和ではないか。 戦争の国で絶えず持ち上がっている平和の談論で私たちは何ができるだろうか? もしかしたら、平和に向けた類似闘争がではないか? 質問は絶えず行われざるを得ない。
2017.6.25を控えたある日, jin yeow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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